3. 남자 수도원 설립(1883-1885) ; 라이헨바흐

“우리는 너무나 은혜를 모르며 사랑이 지독히도 부족하다.
우리가 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비틀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 -

  • 청원서 결미
  • Reichenbach1840
  • Reichenbach1891
  • Reichenbach
1883년 12월, 암라인신부는 라이헨바흐(Reichenbach)에 있는 옛 베네딕도회 수도원건물을 사들였다.
수도 생활의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는 그 빈집인 무너진 옛 수도원 터는 남자 수도원의 수련소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는 우리 수도회의 첫 시작이다. 1884년 6월 29일, 암라인 신부는 포교성 사무처장
야고비니 대주교로부터 교황님의 인준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 날이 쌍트 오틸리엔 수족의 공적인
창립 기념일로 간주되고 있다. 다음 해인 1885년 3월, 라이헨바흐 공동체는 ‘해외 포교 신학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벌써 해외 포교 지원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아무런 경제적인 원조도
없는 가운데 매우 가난하게 살아야 했지만, 그들은 여느 수도원과 같은 일과표를 따르며 수도 생활을
익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