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동 아프리카 선교와 시련과 위기(1887-1889)

아무것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더 낫게 여기지 말라.
- 베네딕도 규칙서 4,21 -

  • 다레살렘
  • 동아프리카노예무역
  • 파견되는선교사
  • 동아프리카묘지
  • 선교지로출발
1887년 11월 18일, ‘성 베네딕도 포교 협회’로 이름을 바꾼 쌍트 오틸리엔의 포교 공동체는 한 명의
신부와 아홉 명의 수사, 네 명의 수녀로 구성된 선교단을 동아프리카(현 탄자니아)로 파견했다.
암라인 신부는 미리 로마에 가서 그동안 미비했던 법적 절차를 밟아 이들이 독일에서 하지 못했던
서원을 로마에서 할 수 있도록 했다. 1889년, 1월 13일 첫 선교지인 동 아프리카 푸구(Pugu)에서는
식민정책에 대항하는 본토 반란군의 습격으로 마르타 반싱(Martha Wansing)수녀와 두 수사가
살해당하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혀갔으며 선교원이 전소되는 참변이 일어났다. 생존자는 다행히
귀환할 수 있었으나 막 시작한 포교 사업이 파괴되고, 이로 인한 희생 외에도 리오바 수녀 등
전염병으로 인한 선교사들의 잇따른 사망은 암라인 신부와 어린 공동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안겨 주었고, 이에 덧붙여 여자 공동체의 장상인 카타리나 수녀의 사임과 퇴회는 전 공동체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