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승인 및 툿찡으로 모원 이전(1900)

“사랑하올 주님께서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예컨대 중요한 결의 사항, 또는 은혜 등을
주시려하면 언제나 예수성심 금요일 중에 주십니다.”
- (비르깃다 코르프 초대 총장 수녀) -

  • 착한목자수녀회
  • 툿찡모원
  • 예수성심
‘선교 베네딕도’ 수녀란, 당시로서는 교회법에 의한 신분 규정이 애매한 상태였다. 하지만 1900년
레오 13세의 교령으로 인하여 활동하는 수녀 공동체들이 정식 수도회로 인정됨에 따라, 베네딕도
회원이면서 선교사 즉 통상적으로 결합될 수 없다고 여겨지던 ‘수도승과 선교사’라는 정체성이 합법화
된 것이다. 이후, 회헌의 완성을 서둘러 1903년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라는 명칭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1904년에는 툿찡으로 모원을 이전하였다. 1923년 아우구스부르그 주교에 의하여
교구 소속 수녀회로 인준 받았으며, 1924년 교황 권하 수도회가 되었다. 이로써 쌍트 오틸리엔의
남자 수도원과는 법적으로 완전 분리되어 독립된 수녀회로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편
일데폰스 쇼버 아빠스와 친분을 맺고 있던, ‘착한 목자 수녀회’의 마리아 드로스테 쭈 뷔셔링(Maria Droste zu Vischering) 수녀는 쇼버 아빠스에게, 성심의 광채가 쌍트 오틸리엔을 향해 비추고 있음을
확신시키며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쇼버 아빠스의 뜻으로, 초기 쌍트 오틸리엔 수족은 ‘예수 성심 수족
’이라 칭해지기도 했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까지 우리 수도회는 예수 성심을 주보로 모시고
특별한 공경을 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