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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6-15 09:44
[독서나눔-김혜경] 몹시도 그리운 이름, ‘아버지’
 글쓴이 : 이은정 (112.♡.103.105)
조회 : 143  
[독서나눔-김혜경] 몹시도 그리운 이름, ‘아버지’- 「허삼관매혈기(許三觀賣血記)」 위화(余華), 최용만 옮김
  • 김혜경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7-06-12 15:14:00
  • 수정 2017-06-12 18:20:50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초대된 위화(余華)는 중국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다. 위화의 대표작 중 하나인 「허삼관매혈기」는 마오쩌둥(毛澤東)이 벌인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은근히 풍자하는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허삼관은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피를 팔며 살아가는 인물인데, 2015년 우리나라에서 하정우와 하지원을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의 터전이 충청도 공주로 바뀌면서 중국 역사의 격랑이 드러나질 않는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중요한 구성 요소인데, 개인사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엮는 바람에 김이 빠져버린 느낌이다. 


원래 허삼관은 생사(生絲)공장에서 누에고치를 날라다주는 일을 하는 노동자다. 그런데 그가 사는 마을에서는 건강한 남자라면 으레 피를 팔아야한다고 여긴다. 그래야 여자를 얻을 수도 있고, 반년 동안 계속 땅을 파는 것보다 많은 돈을 벌수도 있기 때문이다. 큰돈이 드는 일을 단번에 해결할 수도 있다. 청년 허삼관은 맨 처음 피를 팔아 번 돈을 빼어난 미인인데다 살림꾼인 허옥란과 결혼하는 비용으로 쓴다.


허삼관과 허옥란은 일락, 이락, 삼락 아들 셋을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큰아들 일락이가 허삼관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소문이 돈다. 사실 일락이는 허삼관과 결혼하기 전에 허옥란이 하소용이라는 남자와 사귀면서 갖게 된 아이였다. 허삼관은 구년 동안이나 공들여 키운 녀석이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허탈감을 느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생들 때문에 일락이가 대장장이 방씨 아들의 머리를 돌로 찍는 사건이 일어난다. 방씨가 돈이 없다는 허삼관네서 아들의 치료비로 집안 물건들을 몽땅 가져가버리자 허삼관은 이를 되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두 번째로 피를 판다. 그러고는 마음이 헛헛했는지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임분방이라는 처자와 바람이 나는데 피를 또 팔아서 고기며 과일 등 그녀에게 선물을 한보따리 보낸다. 한심한 작자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아내인 허옥란에 대한 배신감과 애써 키운 아들이 친자식이 아니라는 서운함을 그런 식으로나마 보상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와중에 대약진운동의 일환으로 인민공사와 제강생산운동이 일어난다. “올해는 1958년. 앞으로 국가가 빌려준 논밭에 농사를 짓는 거라 이거야. 국가가 이전의 지주가 되는 거지… 우리 생사공장도 요즘은 강철을 제련한다구. 그러니 난 생사공장의 제강공 허삼관이다 이거야…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집집마다 솥과 밥그릇, 쌀, 간장, 식초, 소금까지 가져가는 걸 봤다구… 이제는 전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어야 한다더군” (p.148-149)



공짜로 밥을 먹여준다니. 꿈같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부뚜막도 다 부수고 솥단지에 양념도 다 가져가놓고는, 채 일 년도 못가서 도로 집에서 밥을 해먹으란다. 거기다 끔찍한 가뭄까지 겹치면서 먹을 게 없어 굶어죽거나 구걸하는 사람들이 천지다. 그나마 알뜰살뜰한 허옥란 덕분에 허삼관네는 멀건 죽이나마 연명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배를 곯은 식구들을 위해 허삼관은 또다시 피를 팔았는데, 피를 판돈으로는 피를 나눈 처자식들만 먹이고 싶다면서 일락이만 빼놓고 승리반점엘 간다. 그런 아버지가 너무 섭섭했던 일락이는 화가나 집을 나가버린다. 허삼관은 겉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자신이 너무했다 싶었는지 애타게 일락이를 찾아서 국수를 먹이러 승리반점에 데리고 간다. 일락이의 친아버지 하소용이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었을 때, 싫다는 일락이더러 무당말대로 하소용의 혼을 부르라고 시키기도 한다. 그게 누구든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었을 게다. 아버지다운, 어른의 모습이다.


그 이후 불어 닥친 문화대혁명으로 무조건 마오쩌둥을 따랐던 홍위병들은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과 풍습을 마구 없애려 했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대자보를 써 붙이고 조리돌림 식으로 비판대회를 열어 모욕감을 주기도 했다. 이때 허옥란이 하소용 등 여러 남자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거짓대자보가 나붙는 바람에 목에 팻말을 걸고 하루 종일 밖에 서있는 고초를 겪는다. 허삼관은 이런 아내에게 밥도 가져다주고 집에서 허옥란이 가족들 앞에서 자아비판을 할 때도, 아들들에게 임분방과의 얘기를 털어놓으며 아내를 감싼다. 이런 그의 속마음을 알아서 인지 아무리 일락이를 구박하고 허옥란에게 쫀쫀하게 굴어도 허삼관이 밉지 않다. 아버지가, 남편이 뭐 그러냐 싶다가도 그도 사람이니 그럴 수 있는 거지 싶어진다. 


▲ 문화대혁명 당시 공인들은 얼간이 모자를 뒤집어쓰고 모욕을 당하면서 거리를 끌려다녔다. (사진출처=한겨레/북폴리오)


또 학생과 청년들을 농촌에 보내 힘을 보태게 하라는 마오쩌둥의 방침 때문에 일락이와 이락이도 농촌으로 가게 된다. 그럭저럭 잘 지내는 이락이에 비해 일락이는 농촌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간염에 걸려 심하게 앓는다. 허삼관은 동네를 돌며 돈을 빌리고 한 달 내에는 다시 피를 뽑지 못한다는 말에 린푸, 바이랑, 창닝 등 장소를 옮겨 다니며 피를 팔며 악착같이 치료비를 모은다. 피를 너무 뽑아 쇼크로 죽음의 문턱을 드나들면서도 며칠에 한 번씩 매혈을 하면서 일락이가 입원해 있는 상하이로 향하는 아버지 허삼관의 여정에 마음이 아팠다. 


중국 현대사의 거친 파도 속에서, 피보다도 훨씬 진한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역할을 다하며 살아내는 허삼관의 깊은 속정이 더없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볼 수 없는 내 아버지가 몹시도 그리운 밤이다.

 



⑴ 대약진운동(1958-1960) : 마오쩌둥(毛澤東)이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해 15년 안에 영국을 뛰어넘고 미국까지 따라잡겠다고 호언하며 벌인 운동. 제강생산운동의 일환으로 마을마다 곳곳에 용광로를 만들고는 각 가정의 밥솥에 숟가락까지 모두 녹여 철을 만들었지만 상품성이 떨어지는 철 덩어리여서  이용가치가 적었다. 농촌에서는 파리코뮌에서 이름을 따온 ‘인민공사’(공산주의 사회의 기초단위) 운동이 일어났다. 농업‧공업‧상업‧교육‧군사훈련 등 모든 활동이 인민공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동식당에서 무료로 식사를 주었으며, 아이들은 유아원에서, 노인들은 양로원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그러나 노동은 혹독했던 반면에 분배는 너무 적었다. 열악한 생산 환경에서 사람들의 열정에만 기댄 탓에 생산량을 허위로 보고하는 일이 빈번했고, 극심한 흉년까지 이어지면서 3천만 명 이상이 굶어죽는 등 대약진운동은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⑵ 문화대혁명(프롤레타리아문화대혁명,1966-1976) : 마오쩌둥(毛澤東)이 주도한 극좌 사회주의 운동으로 류사오치(劉少奇)와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鄧小平) 등 자신의 반대파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재탈환하려 했다. 청년과 학생을 중심으로 구성된 홍위병(紅衛兵)을 선동해 수많은 지도자들을 반동분자로 몰아 비판하고 숙청했다. 홍위병들은 구시대의 유산을 제거한다며 수많은 고대 사찰과 사당 등 역사적인 유물들을 파괴했다. 제국주의의 첩자나 수정주의자로 몰리면 가차 없이 폭행하거나 감금하는 등 고문을 자행했으며 재산을 몰수하기도 했다. 많은 지식인과 청년들을 자아비판하게 했고 농촌으로 보내기도 했으며, 사람들은 마오쩌둥의 어록을 몸에 지니고 다녀야 했다.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의 사망으로 일단락되었다. 

중국 법원은 이 기간 동안 3만4천8백 명이 죽었다고 발표했으나 밝혀지지 않은 죽음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훨씬 많은 수가 목숨을 잃었으리라 보고 있다. 1981년 6월 27일 공산당중앙위원회는 문화대혁명에 대해 마오쩌둥의 잘못된 지도하에 당과 인민에게 재난과 혼란을 가져왔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공산당일당체제의 정당성을 견지하기 위해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으며, 그의 사상이 곧 당의 지도이념임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필진정보]
김혜경 : 서강대학교를 졸업했다. 광주문화원 편집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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