툿찡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대구수녀원
성베네딕도수녀원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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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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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22 16:52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의 창립 126주년
 글쓴이 : 집지기 (218.♡.172.59)
조회 : 2,174  



포교 베네딕도 수도회는 성 베네딕도(Benedictus 480-547)회 독일 보이론(Beuron) 대수도원의 안드레아스 암라인(Andreas Amrhein, 1844-1927) 신부에 의해 1884년 6월 29일 독일 라이헨바흐(Reichenbach)에서 창설되었다.

암라인 신부는 베네딕도회의 수도승적 생활에 충실하면서도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남녀 수도회를 설립하였다.(수녀회 1885년 9월 24일 설립)

라이헨바흐에서 시작한 수도회는 쌍트 오틸리엔(St.Ottilien) 으로 이전하면서 초창기의 기틀을 다져 갔고, 1904년 수녀회는 독립된 발전과 성장을 위해 툿징(Ttutzing) 으로 모원을 이전함으로써 남자 수도회와 분리되어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로 발전되어 왔다.





우리의 첫 시작. 무너진 옛 수도원 터에, 문짝도, 창문도, 가구도 없이 화재의 잿더미만 사방에 쌓인 채
돌투성이로 무너져 내린 내부. 수도생활의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는 그 빈집에서, ‘포교 베네딕도회 수도원’이라며 맞아주는 한 사제.
그 자신조차 처음 이 터를 돌아보고...마음이 슬퍼져 miserere를 불렀다....고 쓰고 있다.









“불멸의 영혼이 하느님을 닮게 하고 하느님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 예술이며 가장 심원한 과학이다... 우리는 너무나 은혜를 모르며 사랑이 지독히도 부족하다. 우리가 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비틀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 암라인 신부님






1884년 6월 29일, 바티칸 포교성성은 교황님의 수도회 인준 소식을 전해 주었다. 이 날이 쌍트 오틸리엔 수족의 공적인 창립 기념일로 간주되고 있다. 다음해인 1885년 3월, 라이헨바흐 공동체는 ‘해외 포교 신학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벌써 해외 포교 지원자들이 몰려오기 시작했고, 아무런 경제적인 원조도 없는 가운데 매우 가난하게 살아야 했지만, 그들은 여느 수도원과 같은 일과표를 따르며 수도생활을 익혀나갔다.










1885년 9월 24일 라이헨바흐에 첫 여성 지원자들이 입회했다.
카타리나 솨인스, 엘리사벳 시버링, 아우구스테 슈메띵, 겔트루드 렉커즈...
이 첫 지원자들의 입회일을 여자 수도회의 창립 기념일로 지낸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수도단체 설립도 허락지 않던 국내 정치상황 속에서 신분을 감춘 채
‘노무자와 하녀’로 취급되던 ‘문 뒤의 수도생활’이었다.
수도복을 입을 수도 없고 엄청난 가난만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도
단 하나의 목표 아래 굳게 뭉쳐진 그 마음들은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을 발견하고 가꾸어나갔다.
암라인 신부는 말한다.
“수녀들은 놀라울 정도로 그 요구들이 단순하며, 그들의 장상은 수도적 기풍을 유지하는데 엄격합니다.”






수녀들은 그들이 받은 성소, 기도, 일, 노래...를
빼어나게 잘 수행하려는 열의로 활활 타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몇몇 사람들은 정말 영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서도 그들은 많은 위대한 일들을 해냅니다... -암라인 신부님





아우구스부르그 교구의 엠밍에 하나의 분원이 설립되었다.
맹인들의 수호 성녀인 성 오틸리아에게 봉헌된 성당이 있던 엠밍은
후일 ‘그리스도의 빛’을 전하는 선교적 이미지와 잘 조화되어
쌍트 오틸리엔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공동체는 라이헨바흐에서 쌍트 오틸리엔으로 모두 이전했다.






1887년 11월 18일, ‘성 베네딕도 포교 협회’로 이름을 바꾼 쌍트 오틸리엔의 포교 공동체는
한 명의 신부와 아홉 명의 수사, 네 명의 수녀로 구성된 선교단을 동아프리카로 파견했다.













1889년, 1월 13일 첫 선교지인 동아프리카 푸구(Pugu)에서는 식민정책에 대항하는
본토 반란군의 습격으로 수녀 1명과 두 수사가 살해당하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혀갔으며
선교원이 전소되는 참변이 일어났다. 생존자는 다행히 귀환할 수 있었으나
막 시작한 포교 사업이 파괴되고, 이로 인한 희생 외에도 리오바 수녀 등 전염병으로 인한 선교사들의 잇따른 사망은
암라인 신부와 어린 공동체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안겨 주었고,
이에 덧붙여 여자 공동체의 장상인 카타리나 수녀의 사임과 퇴회는 전 공동체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다.
1895년 9월 17일, 선거를 통해 비르깃다 코르프(Birgitta Korff) 수녀를
모원의 장상으로 선출하고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그녀를 불러들였다.






이미 1891년부터 힘에 부치는 일들과 자신의 역부족을 이유로 사임을 표명해온 암라인 신부의 총장직 사임이 1896년 1월 결정되었다. 선교지의 파괴, 수녀 장상의 퇴회, 창설자의 사임 등은 어리고 경험 없는 공동체의 존립을 의심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업적이 아닌 한, 하느님께서 시작하신 일이라면 인간적 이유로 사그라들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는 더 단단한 줄기를 뻗어 꽃을 피우기 위한 시련이었다. 암라인 신부는 1923년 오틸리엔으로 돌아와, 1927년 12월 29일, 창설자로서의 지극한 사랑을 다하여 남녀 공동체를 강복하고 83세를 일기로 선종하였다. 하느님은 창설자와 그 공동체의 모든 인간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 섭리로 이끌고 계셨다.









암라인 신부의 사임 후, 베네딕도 연합은 쌍트 오틸리엔 수도 공동체의 청원을 받아들여 보이론 수족의 일데폰스 쇼버 아빠스를 오틸리엔 남녀 공동체의 총장으로 임명하였다. 쇼버 아빠스는 보이론 시절, 암라인 신부의 선배였고, 베네딕도 연합회의 공식방문인으로서 쌍트 오틸리엔 공동체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깊었다. 이에 앞서 보이론 수족의 아빠스들은 마리아 라흐 수도원에서 열린 아빠스 회의에서 쌍트 오틸리엔 공동체의 향후 진로를 제시하는 라허 지침을 결정하였다. 이로써 오틸리엔 공동체는 베네딕도 연합의 한 일원으로 공식 베네딕도 수도회가 되었다.

관상 생활을 하지 않는 ‘선교’ 베네딕도 수녀들이란, 당시로서는 교회법에 의한 신분 규정이 애매한 상태였으나, 1900년 레오 13세의 교령으로 인하여 활동하는 수녀 공동체들이 정식 수도회로 인정됨에 따라, 베네딕도인이면서 선교사라는 정체성이 합법화되었다.






이후, 회헌의 완성을 서둘러 1903년 ‘툿찡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라는 명칭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1904년에는 툿찡으로 모원을 이전하였다. 1923년 아우구스부르그 주교에 의하여 교구 소속 수녀회로 인준 받았으며, 1924년 교황 권하 수도회가 되었다. 이로써 쌍트 오틸리엔의 남자 수도원과는 법적으로 완전 분리되어 독립된 수녀회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한편 일데폰스 쇼버 아빠스와 친분을 맺고 있던, ‘착한 목자 수녀회’의 마리아 드로스테 쭈 뷔셔링(Maria Droste zu Vischering) 수녀는 쇼버 아빠스에게, 성심의 광채가 쌍트 오틸리엔을 향해 비추고 있음을 확신시키며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쇼버 아빠스의 뜻으로, 초기 쌍트 오틸리엔 수족은 ‘예수 성심 수족’이라 칭해지기도 했었다. 이러한 이유로 오늘날까지 우리회는 예수 성심을 주보로 모시고 특별한 공경을 드리고 있다.






이러한 우리 회 창설의 역사적 과정을 돌이켜 볼 때,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작용하시어 당신의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의 섭리에 감사드릴 뿐이다. 특히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하느님의 도구로 겸손되이 봉헌하여,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선교하는 베네딕도인’으로써 하느님을 증거할 수 있도록 새로운 소명의 길을 마련하신 암라인 신부님께 깊은 사랑과 존경을 드린다.






이제 툿찡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베네딕도회의 전통을 바탕으로 암라인 신부의 선교 이념에 따라 한국을 비롯한 온 세상으로 뻗어나가, ‘기도하고 일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현재 로마에 총원을 두고 19개국에서 1400여명의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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