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한국인 최초 성직 수도자
기대와 사랑 한몸에 받았던 한국인 성직 수도자의 맏배
출생 : 1914년 3월 31일 경기 파주 갈곡리
세례명 : 아우구스티노
첫서원 : 1939년 4월 10일
사제수품: 1942년 5월 1일
소임: 덕원본당 보좌, 수련장 보좌, 덕원본당 주임
체포 일자 및 장소 : 1949년 5월 11일 덕원 수도원
순교 일자 및 장소 : 1950년 10월 5일 평양 인민교화소
덕원의 순교자 김치호 신부는 한국인 첫 성직 수도자로 상트 오틸리엔 성베네딕도 수도회 소속 모든 수도자로부터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한국인 첫 수도자 사제 탄생은 언젠가는 그와 그의 뒤를 이을 한국인 사제들이 유럽인 신부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수도회 운명을 결정하리라는 희망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덕원의 독일인 수도자들은 김치호 신부를 ‘수도원의 황태자’로 부르며 특별 대우를 해줬다. 신부들은 수도원 식당과 회의실에서 평수사들 둘레의 돋은 자리에 앉았다. 이것은 종신서원 후에나 이뤄지는 ‘승급’이었다. 하지만 김 신부는 예외였다. 덕원 수도자들은 수련자 시절부터 그를 돋은 자리에 앉혔다. 독일인 수도자들이 김 신부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김 신부는 라틴어뿐 아니라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해 독일인 수도자의 한국말 선생 역할을 했다.
“밤 12시 30분에 또다시 종소리가 수도자들을 잠에서 깨웠다.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 등이 체포된 지 이틀 후였다. 필요한 짐을 이미 꾸려 뒀던 수도자들이 마음을 단단히 먹고 현관 앞에 모였다. 정치보위부 요원들이 책상 앞에 다리를 벌리고 앉았다. 누군가 수도자 명단을 가지고 있었다. 부원장 신부부터 시작해 수도자 전부를 하나하나 불러내어 한 줄로 정렬시켰다. 독일인 신부와 수사, 한국인 신부들이 차례로 트럭에 올랐다. 결핵을 앓고 있던 김치호 신부는 폐가 한쪽밖에 없었다. 그때까지 자기 방에 누워 있던 그가 빠진 것을 알아차린 정치보위부 요원들이 그의 방으로 안내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잠들어 있는 사람을 총으로 찔러 깨웠다. 그렇게 신부가 모두 사라지고 수도원은 고아원이 돼 버렸다”(김삼도 마인라도 수사 증언 중에서).
평양 인민교화소에서 김치호 신부는 8㎡ 면적의 습기 찬 좁은 감방에 동료 18명과 함께 갇혔다. “김베네딕토 신부는 폐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탁한 공기 속에서 거의 숨을 쉬지 못했다. 그는 호흡 곤란으로 인해 밤중에는 발작적으로 코를 골아 우리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련한 형제를 깨울 수가 없었다. 이 비좁은 공간에서의 공동생활에서는 전염의 위험성이 아주 높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폐렴 환자가 어디 다른 격리된 공간으로 옮겨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계속해서 부탁했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내려지지 않았다”(「북한에서의 시련」 중에서).
1950년 10월 5일 북한 인민군들이 평양 인민교화소를 말끔히 비우고 북쪽으로 후퇴할 때, 김치호 신부는 폐병으로 각혈이 심한 상태였다. 인민군은 그를 다른 수도자들과 함께 후송하지 않고, 각목으로 때려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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