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365일 중 363차례 빈민지역 찾은 ‘헌신’의 표상
출생 : 1898년 2월 4일, 독일 바인가르텐
세례명 : 마리아
첫서원 : 1923년 2월 2일
종신서원: 1926년 10월
한국파견: 1926년9월 4일
소임: 원산 마리아의 도움 시약소 책임 간호사
체포 일자 및 장소 : 1949년 5월 11일, 원산 수녀원
순교 일자 및 장소 : 1952년 9월 16일, 옥사덕수용소
1898년 2월 4일 태어난 마리아 데레사는(프룩투오사 수녀) 이미 8살 때, 앞으로 이교 어린이들에게 선교하러 가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녀는 1921년 3월 1일 툿찡 베네딕도회 수녀원에 입회하여 프룩투오사(M. Fructuosa) 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마리아 프룩투오사 수녀는 1923년 2월 2일 툿찡 모원에서 첫 서원을 하고 1926년 9월 4일 한국으로 파견되어 북한 원산의 선교기지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리아의 도움” 시약소의 책임 간호사로 임명되었다.
시약소일이 끝나면 거대한 항구도시의 빈민지역과 거지들이 모여 살던 지역을 방문하였다. 빈민지역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여름의 극심한 더위, 비, 태풍 그리고 혹독한 겨울의 추위, 얼음, 눈과 싸우며 아주 먼 거리를 걸어야 했다. 수녀는 두 번이나 티푸스를 앓았고 그로 인해 청각에 손상을 입었다. 선교지에서 일할 때나 가난한 지역을 방문할 때 그녀는 자주 죽어가는 어린이나 병자들을 만났으며 그녀는 그들에게 아주 열정적으로 대세를 베풀었다. 23년 동안 그녀는 대단한 열정을 가난한 사람들과 병자들을 돌보았다.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북한에는 공산주의 체제의 인민 공화국이 들어섰고, 북한의 베네딕도회원들의 활동을 철저하게 억압했다. 특히 프룩투오사 수녀의 활동은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눈엣가시였으나 그녀가 원산에서 워낙 사랑을 받았으므로 해칠 수가 없었다. 결국 1949년 5월 수녀들은 체포되어 몇 달 동안 평양 인민교화소에 수감된 다음 옥사덕 근처 계곡에 있던 수용소로 옮겨졌다. 거기에는 덕원 수도원의 베네딕도회원들도 수감되어 있었다. 수용소의 수감자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 필요한 것들을 구해서 살아야 했다.
과도한 노동으로 프룩투오사 수녀는 점차 약해졌고 마지막에는 몸이 불편해 오직 앉아서만 일을 할 수 있었고 결국 1952년 밤 12시 30분에 평온하고 용감하게 숨을 거두었다.
강제 수용소의 수녀 의사 디오메데스 메퍼트의 증언
툿찡의 수녀들이 처음으로 파견되고 나서 1년 만에 원산으로 파견된 프룩투오사 게르스트마이어 수녀는 그곳 선교 본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빈민가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물론 지위가 높은 부류의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던 “간호사” 일을 20년 이상 했다. 그녀가 대세로 행복한 피안으로 가는 문을 열어주었던 어린이들과 중환자들은 약 5,000명이나 되었다. 감옥에서 이미 그녀는 설사와 수종을 앓았고, 수용소 생활을 하는 동안에 한 번도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단호하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태도로 부엌일을 했으며, 수녀들에게 생기와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그녀는 1951년 심하지 않은 뇌일혈을 일으켜 병자 도유성사를 받은 후에 점차로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그녀가 어려운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나는 그녀가 수선하는 일에 배치되어 조용하게 앉아서 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서도 밤늦게까지 관솔불을 켜놓고 숯 노동자와 벌목 인부들의 떨어진 장갑을 수선하면서 과다한 작업을 했다. 바라던 상태의 호전은 없었으며 병은 다른 사람들에게서와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그녀가 완전히 “침대”에 눕게 되고 사람들이 그녀에게 죽음을 준비시켰을 때, 그녀는 다시 뇌일혈을 일으켰으며 의식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는 1952년 9월 15일 밤에 매우 평화롭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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