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식 마오로 신부는 연길 성 십자가 수도원 소속 한국인 최초의 성직 수사이다. 그는 1913년 8월 24일에 만주 훈춘 노로팟청(Noro=pat=Tung)에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예로니모이다. 원산 수녀원의 김 요세파 수녀가 그의 누나이다.
김봉식 마오로 신부는 1938년 3월 23일에 최 비안네와 함께 법정 수련을 시작했고 1939년 3월 26일 첫서원을 했으며 1942년 부활 대축일(4월 5일)에 연길 수도원 성당에서 백 테오도로(Theodorus Breher) 주교 아빠스의 주례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품 후 팔도구 본당 보좌와 훈춘 본당 보좌를 역임하였다.
소련 군대가 연길을 점령하여 연길 수도원 선교사들이 체포된 후에 김봉식 신부는 덕원 수도원의 신 보니파시오 주교 아빠스에게 청하여 선교 지역을 옮겼다. 그래서 그는 원산 지역에서 사목하였다. 그리고 그는 1949년 5월에 덕원 수도원의 독일인 선교사들이 감금되었을 때, 함경남북도 지역을 순회하며 사목하였다.
김봉식 마오로 신부는 1950년 6월 24일, 원산에서 체포되어 원산 와우동 형무소에 감금되었다. 1950년 10월 9일, 북한 공산군은 유엔군의 진격으로 패주하면서 함께 수감되어 있던 이광재(디모테오, 춘천 교구 소속) 신부와 김봉식 신부, 그리고 약 400여명의 인사들을 와우동 형무소 뒷산 대방공호 속에서 무참히 학살하여 그곳에 방치하였다.
원산은 1950년 10월 10일에 수복되었으며, 이 살육의 현장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한준명 목사의 증언을 듣고, 원산 본당 교우들은 두 신부의 시신을 찾았다(김봉식 신부는 의복으로 확인되었고, 이광재 신부는 어릴 적 다친 손가락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10월 23일 유엔군 군종 신부의 주례로 이들에 대한 장례 미사를 거행하고 원산 본당 뒷동산에 있는 본당 묘지에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