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수 베르나르도 신부는 덕원 성 베네딕도 수도원 소속 성직 수사이다. 그는 연길 교구의 가장 오래된 선교기지 가운데 하나인 삼원봉에서 1918년 2월 12일에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베르나르도였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회령으로 이주하였다.
1935년 초, 덕원 신학교(소신학교)에 입학하였다. 덕원 신학교 중등과를 마친 후, 덕원 수도원에 입회하여 법정 수련(수도명은 세례명과 같은 베르나르도 Bernardus)을 마치고 1943년 9월 8일 성모 성탄 축일에 첫서원을 하였다.
그는 1948년 4월 6일 덕원 수도원 성당에서 신 보니파시오 주교 아빠스의 주례로 사제로 서품되는데 덕원 수도원 성당에서 가족이나 친척이 한 명도 참석하지 못한 채 첫 미사를 봉헌하였다. 왜냐하면 당시에 연길 지역의 공산화로 왕래가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1949년 5월 11일 덕원 수도원에 있던 모든 독일인 수도자들 그리고 한국인 최병권 미티아 신부, 김이식 마르티노 신부,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와 함께(독일인 신부 8명, 독일인 평수사 22명, 한국인 신부 4명으로 총 34명) 체포되어 평양 인민교화소로 압송되었다. 1949년 8월 5일 평양 인민교화소에 수감되었던 대부분의 독일인 형제들이 옥사덕으로 분리 수용된 후 김 신부의 행방은 알 수 없다. 1950년 10월 5일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할 때 피살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