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철 마르코 신부는 덕원 자치수도원구 사제였다. 그는 1913년 1월 3일 부산시 영주동에서 김성준(요셉)과 박부경(벨다)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세례명은 마르코였다. 부산 교구 김동언(金東彦) 신부가 그의 친형이다.
그는
일본 와세다 대학 전기공과 재학 당시 성베네딕도회 소속 탁 파비아노신부를 만난 것을 계기로 대학을 중퇴하고 덕원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서품 후 김동철 신부는 모교인 덕원 신학교 교수 신부로 발령을 받아 재직하면서, 함흥 본당의 사목을 돕기도 하였다. 김동철 마르코 신부는 1944년 평안남도 안주본당의 주임으로 임명되어 1946년 10월까지 사목하였다. 1945년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를 초대하여 분원을 설립토록 하였고, 해방 후 본당에 ‘우리말 공부 교실’을 개설하여 좋은 결실을 거두었다.
1946년 10월에 그는 평안북도 비현 본당 주임으로 전임되어 1950년 6월 27일까지 사목하였다. 1947년 초에 비현 본당 내 성심학교(聖心學校) 교사를 비현면 인민 위원회가 징발하려 하자 이에 저항하다 감금되었다가 풀려났다. 1948년 8월 27일에는 영원한 도움의 수녀회 비현 분원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는 1950년 6월 27일 밤에 그는 평양 교구 내 성직자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체포되었다. 이후의 행방은 불분명하나 피살되었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