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마르쿠스 수사) 메쯔거는 1879년 1월 26일 툿칭에서 멀지 않은 모나츠하우젠/트라우빙에서 태어났다. 시몬은 1897년 말경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899년 마르쿠스(Marcus)라는 수도명을 받고 수련기를 시작하였다. 그는 1900년 10월 14일 첫 서원을 하였고 1904년 10월 14일 종신서원을 하였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동아프리카에 선교사로 활동했으나 그곳 기후를 견디지 못해 귀원하였다. 그 후 1911년 1월 7일 한국으로 파견되었는데 그의 소임지는 서울 백동 수도원의 문간이었다.
마르쿠스 수사 역시 다른 독일 수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평양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이어서 옥사덕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학대에 시달리고 영양실조에 걸려 1949년 8월 3일 세상을 떠났다.
강제 수용소의 수녀 의사 디오메데스 메퍼트의 증언
“마르쿠스 메쯔거 수사는 우리가 수용소에 왔을 때 이미 심하게 부어 있었다. 수용소에는 쉴 틈 없는 건축 공사로 인해 그가 그렇게도 열망했던 조용한 곳이 없었다. 나날이 그의 부기는 심해졌고 힘은 떨어졌다. 갈증은 그를 끔찍이도 괴롭혔다. 7월 말에 그에게 심한 탈수현상이 일어났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힘을 요구했다.
그는 겸손하고 고매한 그의 성품대로 다른 사람을 성가시게 하지 않으려고 했으며, 누군가 그를 부축하고자 하면 단호하게 거절하고 마지막까지 몸을 끌고 집 뒤 화장실로 갔다. 8월 3일 그는 집 앞에서 쓰러졌다. 10분 후에 그는 숨을 거두었다. 신부들이 곧 돌 것이라는 소식에 그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그는 성스러운 노자성체를 그렇게도 열망했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충실한 종을 먼저 당신에게로 소환하셨다. 8월 6일, 체포된 동료들이 마지막으로 이송되어 왔을 때 그는 이미 묻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