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완성하지 못한 수도자의 길, 순교로써 천상으로 이어져
출생 : 1919년 10월 14일 평남 순안
세례명 : 안젤라
첫서원 : 1943년 6월 22일
체포 일자 및 장소 : 1950년 9월 24일, 평남 순안
순교 일자 및 장소 : 1950년 10월 11일, 평남 순안
박 안젤라(루시아 수녀)는 1919년 10월 14일 북한 순안에서 3남매 중 맏딸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안젤라는 확고하고 활동적인 신앙심을 키웠으며, 깊은 연민으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돕는 법을 배웠다. 그녀의 고모인 원산 수녀원의 박 골룸바 수녀가 원산에서 착복식을 했을 때, 그 예식에 참여한 안젤라는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그 자리에서 공동체에 입회할 생각을 하였다.
지원자로 있는 동안, 안젤라는 음악 선생님이 되는 시험에 합격했다. 그녀는 똑똑하고 매우 활동적인 성격으로 어려움을 잘 참고 견딜 줄 알았다. 수련기 시절, 그녀는 서원 허락을 얻기 위해 더 오래 기다려야 했는데 낙심하고 있었을 때, 골룸바 수녀가 그녀에게 “누가 먼저 서원을 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큰 순교의 관을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너는 인내로써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루시아 수녀는 1943년 6월 22일 첫 서원을 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 제2차 세계대전 내내, 원산 수녀원은 실제적으로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로부터 고립되어 있었다. 1945년 소련군이 북한에 들어왔으나 그들은 선교사들의 자유를 제한했을뿐 박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소련은 비밀리에 북한 공산당원들이 1949년 벽두에 정권을 잡도록 준비를 했고, 그 다음부터 박해가 시작되었다.
1949년 5월 10일 밤, 정치보위부원들이 원산 수녀원을 몰수하고, 19명의 한국 수녀들은 원산의 “인민교화소”에 감금되었다. 그들은 게으르고 쓸모없는 인민들로 고발되었으며 결혼을 강요당하였다. 일주일 후 그들은 수녀원으로 돌려보내졌으나 일반인 복장을 하고 각자의 가정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루시아 수녀는 원산에서 고향인 순안으로 돌아왔다.
수녀들은 자기들끼리 “수도자를 만드는 것은 수도원 건물이나 수도복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모두가 마음을 다해 포교 베네딕도 회원으로서 소명에 충실히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루시아 수녀는 겁 없이 공산당원들의 회의실에 아이들을 모아 놓고 일주일에 세 번씩 교리를 가르쳤는데, 아이들은 거기서 성가도 배웠다. 루시아 수녀의 친척 중 몇몇은 공산당원이었고, 당연히 그들은 루시아 수녀의 이런 활동을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한때 루시아 수녀의 집에서 하인 일을 했던 그녀의 사촌 중 한 명이 고위직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는 당국에 루시아 수녀에 대해 보고하였고 1950년 9월 24일, 그녀는 체포되었다.
1950년 가을, 국군이 북쪽으로 진격하였다. 국군이 순안 인근에 도착했을 때, 공산군은 모든 수감자들을 산으로 끌고 가 그들을 총살하였다. 그 날짜는 정확하지 않은데, 10월 5일이나 11일 혹은 12일이었다고 한다. 박 루시아 수녀는 그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처형된 수감자들 중 하나였다. 루시아 수녀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충실하였고 고결한 수도자의 정신을 지켰다. 루시아 수녀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였고, 31세에 자신의 생명을 바칠 만큼 이에 충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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