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철 베드로 신부는 1906년 5월 28일 황해도 신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산 대목구 소신학교를 거쳐 덕원 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1937년 9월 8일 연길 수도원 대성당에서 테오도로 브레허 주교 아빠스로부터 부제품을 받았고 1938년 3월 21일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로 서품된 후 출신 본당인 팔도구 본당의 보좌 신부로 사목생활을 시작하였고 1943년에는 왕청 준본당의 주임이 되었다. 왕청에서 사목할 당시 1945년 만주에 진입한 소련군에 의해 연길 대목구 내 한국인 사제들과 함께 체포되었다가 얼마 후 풀려났다.
그리고 소련군이 만주에서 철수하고 난 뒤에도 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중국 공산당에 의해 또다시 체포되어 1948년 인민재판을 통하여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극적으로 탈출하여 연길 대목구장 브레허 주교의 지시로 남행을 결행하였다.
남하하던 중 1948년 황해도 장련 본당의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사목하는 동안 미사 강론 때마다 반유물론적인 내용을 자주 언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청년 신자들이 인민군에 입대하는 것을 만류하여 늘 공산당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결국 ‘착한 양들과 함께 있겠다’며 끝까지 본당을 떠나지 않았던 신윤철 신부는 1950년 6월 24일 밤, 정치보위부원에게 체포되어 구금되었다가 어디론가 끌려가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