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루도비히 수사) 피셔는 1902년 10월 23일 로텐부르그-슈투트가르트 교구의 마르크트루스테나우 본당구역에 속한 운터쉬텔츠하우젠에서 태어났다.
칼은 1923년 1월 9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 입회하여 1923년 10월 14일 루드비히(루도비꾸스 Ludovicus)라는 수도명을 받고 수련기를 시작했다. 1924년 10월 15일 첫서원을 하고, 1925년 9월 27일 한국으로 파견되었으며, 1927년 10월 15일 한국에서 종신서원을 발하였다. 1927년 수도원이 서울에서 덕원으로 이전한 다음, 한국어로 전례서, 교리서, 영성서적을 발간하기 위해 인쇄소가 세워졌을 때 루드비히 수사는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1949년 4월 28일 루도비히 수사는 ‘인쇄소 사건’ 체포되어 평양 인민교화소에 수감되었다. 이 사건은 루드비히의 감독 하에 있던 직공 하나가 하루 일과가 끝날 즈음에 수도형제들이 모르게 반공산주의 선전지를 인쇄하였는데 이것이 나중에 발각된 사건이다. 연행된 첫 날부터 그는 독방에 갇혔고 다른 수도형제들과 어떤 연락도 할 수 없었다.
1950년 10월 유엔군이 진격해오자 북한군은 후퇴하기 시작하였고, 평양 인민교화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한국 공산당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루드비히 수사는 10월 11월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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