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Chr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B – 72,11
Chr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B – 72,11
(St. Benedictus, A.D. 480년-547년으로 추정)
서기 480년경 이탈리아 노르치아(Norcia)에서 출생한 성 베네딕도는 서방 수도원의 창설자이다.
1964년 10월 24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성 베네딕도를 유럽의 주보성인으로 선포하고 7월 11일을 성인의 축일로 제정(547년 3월 21일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8세기 말부터 여러 지방에서는 7월 11일에 축일을 기념)하여 성 베네딕도는 서방수도원의 사부인 동시에 유럽 전체의 아버지가 되었다.
성 베네딕도는 자신의 생애에 대해 스스로 남긴 바가 없어 생애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다. 그러나 고맙게도 성 베네딕도의 생애에 대한 유일한 사료(史料)가 되어주는 『그레고리오 대종의 대화집』 4권 중 제2권을 통해 우리는 그의 생애와 영성을 알 수 있다. 그레고리오 대종에게 있어서 성 베네딕도는 하느님 말씀의 투명하고도 빛나는 반영이었다. 그래서 그는 베네딕도를 ‘하느님의 사람(Vir Dei)’ 이라고 부르며, 그가 행한 수많은 기적 이야기를 통해 구약과 신약 성경의 말씀이 어떻게 면면히 한 인간의 삶에 육화되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또한 성인의 유명한 저서인 『베네딕도 규칙서 Regula Benedicti』를 통해서도 그의 생애와 영성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는 뛰어난 분별력과 명쾌한 표현으로 규칙서를 저술하였다.
그분의 성품과 생활을 더 자세히 알고자 하는 사람은 그분이 행동으로 가르친 모든 내용을 이 규칙서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자신이 직접 생활하셨던 것과는 다른 어떤 것도 가르칠 수 없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지 알아 보라.
규칙서 58,7 (Sollicitudo sit si revera Deum quaerit.)
· 아무것도 그리스도보다 낫게 여기지 말라.
규칙서 72,11 (Christo omnino nihil praeponant.)
·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규칙서 57,9 (Ut in omnibus glorificetur Deus.)
베네딕도 성인이 남긴 유일한 저서인 『베네딕도 규칙서』(Regula Benedicti : RB)는 정확한 저술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성인의 생애 후반기(530∼540)에 마무리 된 것으로 전해진다.
베네딕도는 비코바로(Vicobaro), 수비아코(Subiaco), 몬테카시노(Monte Casino)에서 직접 체험하고 묵상한 것을 구체화하여 규칙서를 집필하였는데 당시까지 있었던 동방 수도 양식을 다소 완화하여 지나친 엄격성을 피하고 분별력과 중용의 정신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다. 베네딕도는 자신의 규칙서보다 조금 먼저 있었던, 분량이 많은 『스승의 규칙서』(Regula magisrti : RM)를 간소화하고 자신의 소신을 첨가하여 고유한 규칙서를 작성한 것이다. 이러한 고유성으로 말미암아 『베네딕도 규칙서』는 서구 수도원들의 규칙서로 사랑받게 되어 스승의 규칙서는 사라지고 『베네딕도 규칙서』만 남았으며 오늘날에도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따르고 있다.
사부 성 베네딕도와 그의 후예들은 교회와 서구 사회 문화 진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베네딕도 규칙서』는 수도원에서 뿐아니라 종교계를 떠난 일반 사회에서도 교육학, 심리학, 행정, 문화, 대인 관계 부문 등 여러 계층에게 읽히게 되어 인쇄술이 없던 시절 성경 다음으로 많은 필사본을 남겼다.
73장으로 된 이 작은 분량의 규칙서에는 ‘은세, 청빈, 겸손, 순명 등 동방 수도생활의 요소’를 담은 동시에, 당시까지 없었던 ‘정주’를 수도생활의 중요한 요소로 포함시켰다. 이러한 덕행을 닦는 수도생활의 하루 일과는 성무일도, 거룩한 독서, 노동이라는 3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시간 전례인 성무일도와 거룩한 독서를 기도로 한데 묶은 하루 일과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로 요약된다. 수도자의 의무는 기도하고 일하는 것이다. 기도와 일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베네딕도회 수도생활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베네딕도는 수도승을 받아들이는 기준을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지, 하느님의 일(성무일도)과 순명에 열성이 있는지, 모욕을 참아 받는지’에 두고 선별했다. 그리고 수도원에 ‘정주’할 것을 요구하며 수도승답게 생활하는 삶(Conversatio Morum)이 되도록 하였다.
베네딕도는 『베네딕도 규칙서』에서 ‘수도승’(monacus)은 ‘하느님을 찾는 사람’이며 수도원은 ‘주님을 섬기기를 배우는 학원’이라 칭하고 있으며 수도 생활의 기본적인 덕을 ‘순명과 침묵과 겸손’으로 제시했다. 베네딕도의 수도 정신과 영성을 간직하고 있는 『베네딕도 규칙서』는 수도 생활의 영적 원리들과 규율들을 다루고 있는데 폭넓은 적응성과 중용(中庸)의 정신으로 조화를 이루어 서방 수도 생활의 초석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독일 보이론 베네딕도 대수도원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1844-1927)
남자 베네딕도 수도회 설립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설립
정식 수도회로 인정
(교황레오13세 교령)
독일 보이론 베네딕도 대수도원의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는(1844-1927)
하느님으로부터 해외 선교의 부르심을 받고, 사부 성 베네딕도의 수도 정신에 자신의 선교 이념을 접목시켜 ‘수도승적 규율 준수와 선교사’ 라는 당시로서는 특별한 수도 생활양식에 대한 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여 1884년에 남자 베네딕도 수도회를, 1885년에는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를 설립했다.
남녀 수도회는 성 베네딕도의 가르침에 따라 ‘모든 일에 있어 하느님께서 영광 받으시도록’ 기도 생활과 공동체 생활을 통하여 창설자 암라인 신부의 선교 이념을 실현하고 있다.
‘선교 베네딕도’ 수녀란, 당시로서는 교회법에 의한 신분 규정이 애매한 상태였다.
하지만 1900년 레오 13세의 교령으로 인하여 활동하는 수녀 공동체들이 정식수도회로 인정됨에 따라, 베네딕도 회원이면서 선교사’라는 정체성이 합법화된 것이다.
이후, 회헌의 완성을 서둘러 1903년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라는 명칭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았고, 1904년에는 툿찡으로 모원을 이전하였다. 1923년 아우구스부르그 주교에 의하여 교구 소속 수녀회로 인준 받았으며, 1924년 교황 권하 수도회가 되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1요한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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