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1,29-32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게 되는 계기는 모여드는 군중이다.
군중이란 서로 아무 관련도 없는 많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군중이 모일 때는 일시적으로 어떤 목적에 따라 모인다.
정치적 현안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이기도 하고
어디서 교통 사고가 났거나 누군가 치고받고 싸울 때 그걸 구경하기 위해서도 모인다.
군중 심리리는 것도 있다.
혼자일 때는 하지 못할 일을, 많은 사람이 하고 있으면 거기 끼어들어 용감하게 저지를 수 있다.
군중은 사람 수가 많다.
하지만 많이 모였다고 해서
언제나 군중이 모인 목적이 옳고 좋은 것은 아니다.
예수님에게로 모여든 군중은
옳은 목적을 가지고 모이지는 않았었나 보다.
예수님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군중은 예수님에게서 메시아다운 화끈하고 확실한 뭔가를 요구했던가 보다.
그러니 ‘표징을 요구하는 악한 세대’라는 날선 말씀을 하시는 거겠지.
요즘 세상에서는 뭐든지 자극적인 것들이 먹힌다.
평범한 미담보다는 충격적인 스캔들이 더 빨리 알려지고,
뉴스들도 좋은 소식보다는 엽기적인 소식들을 더 자세히 보도한다.
드라마도 막장일수록 시청률이 치솟는다.
충격적일수록 더 강하게 기억되고, 입소문을 타기 쉽다.
입소문을 타면 군중심리가 작용해서
너도 나도 다 관심이 거기 쏠리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확실한 표징을 주시는 대신,
지혜를 찾음과 회개를 내세우신다.
참된 신앙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노력해야 하는 두 가지다.
뿐만 아니라 무려 이방인들을 이것들의 모범으로 제시하신다.
지혜는 하느님의 뜻을 알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의 율법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깨달음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인생을 살아갈 때 삶의 지혜를 체득하게 된다.
또 그 지혜 추구를 통해서 하느님에 대한 지식도 얻게 된다.
성경의 많은 인물들은 하느님을 불신하거나
자신의 욕망 때문에 죄를 지었다가도,
하느님의 말씀에 굴복해서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온다.
다윗이 그랬다.
예수님 말씀대로 니네베 사람들도 그랬다.
잘못의 인정과 뉘우침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이 첫걸음을 떼기가 참 힘들지만,
일단 한 걸음을 떼면,
하느님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주신다.
그런데 지혜를 탐구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일같은 것들은
‘표징’을 보는 것과 달리 쉽지 않다.
표징을 보는게 오히려 쉬울 수도 있다.
예수님이 충격적인 뭔가를 보여주시고
우리는 ‘우와! 대박!’ 이러면서 믿기만 하면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봤다면 다함께
‘예수님 대박! 진짜 우리 메시아!’
이러면서 환호할 수도 있을 거다.
그야말로 예수님으로 대동단결이 가능하다.
지혜 탐구에는 자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순간들이 매우 드물다.
지루한 일일 수도 있고 남이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다.
군중 속에서 같이 몰려다니며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지혜는 하느님의 말씀을 숙고하고
나의 생활을 돌이켜보며 반성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조용히 이루어진다.
지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 안에 한밤중의 눈송이처럼 쌓여나가는 것이다.
회개라는 것도 힘든 작업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에게 회개하라고 윽박질러봤자
나는 꿈쩍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진짜 회개는 마음의 밑바닥을 들여다 보면서
죄로 상처투성이가 된 내 영혼을 대면해야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지혜 탐구와 회개는 고독한 작업이다.
절대로 화끈하게 뭔가 즉시 볼 수도 없고,
나도 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여줄 수 없는 작업이다.
‘표징’은 내 바깥에서 구할 수 있지만
지혜 탐구와 회개는
예수님의 말씀에 기대어
내 안으로 내려가야 얻을 수 있다.
본국의 화려한 궁정생활을 떠나
긴 여행 끝에 솔로몬을 만나러 온 시바의 여왕.
그 여왕에게는 지혜를 얻기 위해
혼자 멀고 먼 길을 오는 인내가 있었다.
세계에서 제일 가는 도시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한 예언자의 외침에 마음을 돌린 니네베 사람들.
그들에게는 회개하라는 낯선 권고에
자신들을 한 번 돌아보는 열린 마음이 있었다.
그들이 만난 솔로몬과 요나보다도 더 큰 사람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말씀하시고 회개를 촉구하신다.
시바의 여왕보다도 더 간절히 지혜를 찾는 마음으로,
니네베 사람들보다 더 열린 성찰의 마음으로
우리도 예수님께 응답해드려야 하겠다.
-이 보나벤뚜라 수녀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9-32
그때에 29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30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32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Gospel Lk 11:29-32
While still more people gathered in the crowd, Jesus said to them,
“This generation is an evil generation;
it seeks a sign, but no sign will be given it,
except the sign of Jonah.
Just as Jonah became a sign to the Ninevites,
so will the Son of Man be to this generation.
At the judgment
the queen of the south will rise with the men of this generation
and she will condemn them,
because she came from the ends of the earth
to hear the wisdom of Solomon,
and there is something greater than Solomon here.
At the judgment the men of Nineveh will arise with this generation
and condemn it,
because at the preaching of Jonah they repented,
and there is something greater than Jonah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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