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5,31-40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기념일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종말설교(24,45-25장)에서 마지막 네 번째 것으로
최후의 심판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는 마태오 24,29-31에서
우리가 살펴본 “사람의 아들”이
재림하시는 날에 대한 이야기의 속편으로
종말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이 비유는 가난한 자들과 그리스도를 동일시 하고 있다.
복음사가는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주님은 가난한 이웃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이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 “의인”이라 칭하고,
이웃을 돌보지 않은 이를 “저주 받은 이”라고 칭한다.
우리가 살펴본 “사람의 아들”이
재림하시는 날에 대한 이야기의 속편으로
종말에 있을 최후의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이 비유는 가난한 자들과 그리스도를 동일시 하고 있다.
복음사가는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주님은 가난한 이웃을 보고 관심을 가지고 돌보는 이를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 “의인”이라 칭하고,
이웃을 돌보지 않은 이를 “저주 받은 이”라고 칭한다.
의인은 주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도 올바른 사람이다.
복음사가는 우리가 평소에 주님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이웃에 대한 애덕 행위에 있다고 강조하고,
종말의 심판 기준은 우리들이 가난한 자들
(환자, 굶주리는 이, 감옥에 갇힌 이, 목마른 이, 나약한 이, 무력한 이 등)을
돌보는 자비의 행위에 달려 있음을 강조한다.
매일의 삶 안에 우리는 각자가 설자리가 어디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자신의 일상생활을 솔직하게 반성해 보고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보자.
우리 주위에 누가 가난한 자인가?
누가 배고픈 자인가?
누가 병든 자인가?
누가 목마른 자인가?
누가 감옥에 갇혀있는 자인가?
나는 배고프고, 목마르고, 병들고, 감옥에 갇힌 자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는가?
혹시 나는 그들이 나와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그냥 지나치지는 않았는가?
나의 무관심이 애덕을 거스르지는 않았을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31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 말랐을 때에 마실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37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먈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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