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3,1-9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그림 출처: https://dzen.ru/a/X5ujA0-TolsUfaoT
이 복음을 읽을 때마다 왜 뜬금없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연상되는 걸까. 크리스틴을 곤돌라에 태우고 지하 아지트로 내려가는 유령이 예수님과 닮은 것도 아니고 장면의 맥락이 유사한 것도 아니다. 근데 왜? 공통점은 수상 교통수단이 등장한다는 것뿐인데.
아마도 내 상상 속의 배에 탄 예수님과 그날 분위기가 어둡고 신비로워서 그런 듯하다. 언제나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일찍 기상, 출근해서 아직 어스름한 하늘이 드리운 호숫가 보트에 올라타는 예수님이 그려진다. 그 아침에 예수님 말씀을 들어보겠다고 모인 이들에게도 눈길이 간다. 오늘 하루도 부지런히 살자는, 복음과 전혀 상관없는 묵상 잠깐 해주시고.
예수님 말씀은 어떨 땐 너무 간단하다. 오해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너무 소박해서 문제가 될 지경이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말씀 뒤에 예수님의 해설이 따라 나온다. 그 해설에 의하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을 각종 땅으로 비유했다고 이해된다.
그러나 오늘 복음 묵상에서는 씨 뿌리는 사람에 초점을 맞춰보려고 한다. 주인공 농부가 씨를 흩뿌리는 동안 어떤 시는 길로 떨어지기도 하고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지기도 한다. 주인공이 거기 뿌리고 싶어서 뿌린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손이 헛나가거나 손가락 사이로 씨앗이 흘러나갔을 수도 있다. 그는 이제 갓 농사일을 배우는 사람일 수도 있다. 좌우지간 씨를 뿌리는 주인공의 묵묵한 손짓을, 말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뿌려지는 씨앗들이 톡톡 튀며 여기저기 땅에 올라앉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본다.
주인공은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밭 안에 씨가 뿌려지지는 않는다. 길에, 돌밭에,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들은 헛수고를 상징할 수도 있다. 물론 그의 부주의나 그닥 솜씨좋지 못한 손놀림처럼 그의 탓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약간의 어설픔에도 불구하고 좋은 땅에 자리잡은 씨들 덕분에 수확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들이 내는 수확의 합이, 나쁜 땅으로 튕겨져 나가 사라져버린 씨들의 합보다는 언제나 월등하다. 100배, 60배, 30배… 숫자들을 되뇌일 때마다 입꼬리가 근질거리며 올라간다. 나는 밭노동이라는 걸 수녀원에 와서 처음으로 경험한 주제지만 그래도 열매를 거둘 때 신난 기분은 좀 알기 때문이다.
사실 씨를 뿌리고 키우는 농사의 찐 주인공은 하느님이시고, 100배의 수확은 전적으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얼마나 힘과 위로가 되는지! 나의 어설픈 노력과 미숙한 솜씨 때문에 허비하는 것들, 실패하는 것들도 많지만 종내는 하느님께서 그 노력의 씨들 가운데 크게 키워주시는 것이 분명 있음을 나는 안다.
예수님도 그 아침에 자신에게 몰려든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보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시지 않았을까? 이들 중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누가 회개할지, 누가 100배의 결실을 맺을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아침부터 완전한 율법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그들에게 정성껏 설파하신다. 당신이 하실 일은 씨를 뿌리는 일이고, 언제 어디선가 그것을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아시기 때문이겠지.
- 보나벤뚜라 수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3,1-9
1 그날 예수님께서는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다.
2 그러자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물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자,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들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들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들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렸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서른 배가 되었다.
9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Gospel Mt 13:1-9
On that day, Jesus went out of the house and sat down by the sea.
Such large crowds gathered around him
that he got into a boat and sat down,
and the whole crowd stood along the shore.
And he spoke to them at length in parables, saying:
“A sower went out to sow.
And as he sowed, some seed fell on the path,
and birds came and ate it up.
Some fell on rocky ground, where it had little soil.
It sprang up at once because the soil was not deep,
and when the sun rose it was scorched,
and it withered for lack of roots.
Some seed fell among thorns, and the thorns grew up and choked it.
But some seed fell on rich soil, and produced fruit,
a hundred or sixty or thirtyfold.
Whoever has ears ought to hear.”
댓글을 남겨주세요
Want to join the discussion?Feel free to contrib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