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0,17-22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그냥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아기자기 맘 편히 살 수는 없는 걸까? 내 신앙이나 신념 때문에 무슨 불편한 충돌을 빚고 싶지는 않다. 높으신 분들하고는 더더욱. 그들에게는 잘보일 필요가 있다. 내 가진걸 모두 빼앗아갈 수 있는 분들이다. 제가 가진게 좀 있거든요. 아니면 조용히 무관하게 사는게 그냥 중간은 가는 길이다. 지금까지 배워왔고 늘 해오던 대로 인내와 희생을 바치는게 갈등 상황을 맞아 주도적이 되거나 용감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쉽다. 더군다나 뒷말도 없고 후환도 없는, 가장 좋은 처세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꾸만 증언해야 하니 뭐니 말씀하신다. 그것도 내 안위를 좌우하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말이다. 달갑지 않다. 남 앞에 나서기도 싫고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부담스러운데 심지어 증언씩이나 하라니? 예수님이 가르치신 모든 것들은 그들이 전통이며 정통이라고 믿는 신앙 내용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들이다. 그런걸 주장하라고요?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라고요? 저한테 기대치가 너무 높으신거 아닌가요, 예수님?

증언해야 하는 때라는 것도 달갑지 않다. 나는 그런 때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나 혼자 예수님 믿고 희생과 작은 사랑을 실천하면서,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예수님을 믿고 산다는게 전반적으로 편한 일은 아닌 거 같지만, 최대한 몸사리고 살고 싶다.

성탄의 기쁨과 구원의 희망으로 터져나가는 어제를 보냈다. 이제 살림 좀 피겠구나. 그러고 오늘 일어났더니 첫 순교자 스테파노 이야기와 박해의 예고가 등장한다. 스테파노는 말 그대로 예수님을 증거하다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니까 복음은 기쁜 성탄이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 후폭풍을 알려주는 것이다. 스테파노의 죽음이 바로 그분을 구세주로 맞이하고 증언하는 사람의 운명이라고. 예수님이 애초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뭔가 라면 봉지에 “포장지의 제품 조리 사진은 실제와 다를 수 있습니다” 라고 쪼그만 글씨로 쓰여진 문장같이 얄밉다.

예수님을 증거하던 스테파노는 하늘이 열리고 거기 계신 하느님과 예수님을 본다. 또 이걸 생각해 보면, 어제 탄생하셔서 아기의 모습이신 예수님의 본색을 처음으로 목격하는게 스테파노이기도 하다. 아침에 진리를 깨우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대로, 스테파노는 여한이 없었겠다 싶기도 하다. 한편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깨달은 이는 그것을 증언하지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그것이 결국 세상에서 왕따 당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스테파노는 예수님을 목격할 뿐 아니라 거칠 것 없는 언변으로 그 내로라하는 유대교 최고 의회의 대사제, 율법학자들, 원로들을 할 말 없게 만든다. 증거하는 이의 박해를 예고하셨던 예수님은 그러고 보니 무엇을 증언해야 할지 손수 알려 주신다고도 하셨구나. 아버지의 영으로 말하게 해주리라고 하셨구나.

작은 아기 안에서 하느님의 아들을 보는 눈과, 그분이 그런 분임을 증언할 수 있는 용기와 확신과 언변, 성령 충만한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는 불같은 운명이 슬슬 부러워지기 시작한다.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아무도 하지 못하는 말을 외치면서, 누구나 두려워하는 죽음을 성령의 충만함 안에서 맞이해 보고 싶다. 외적인 모양으로는 돌에 맞아 죽는 비참한 죽음이겠지만 거기 감추어진 충만함은 스테파노 혼자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것을 바라려면 우선 어제 태어나신 그분 앞에 무릎을 끓어야겠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7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19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20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21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Gospel
MT 10:17-22
Jesus said to his disciples:
“Beware of men, for they will hand you over to courts
and scourge you in their synagogues,
and you will be led before governors and kings for my sake
as a witness before them and the pagans.
When they hand you over,
do not worry about how you are to speak
or what you are to say.
You will be given at that moment what you are to say.
For it will not be you who speak
but the Spirit of your Father speaking through you.
Brother will hand over brother to death,
and the father his child;
children will rise up against parents and have them put to death.
You will be hated by all because of my name,
but whoever endures to the end will be sa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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