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조앤 치티스터]
▶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충실하기보다 다른 것을 찾을 때가 많다. 그들은 시계를 보면서, 미래를 생각하면서 현재를 살아간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보면 그들은 그 어디에서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항상 한 발을 내일에 걸쳐 놓고 산다.
▶ 태어날 때 – 내면의 자유와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시선과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다. 세상이 말하고 가르치는 대로가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진리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누구도 이러한 사람을 노예로 만들 수 없으며, 그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다.
▶ 태어날 때 – 미국의 시인 헨리 롱펠로는 불멸의 가치에 대해...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안전하다. 그들은 아무도 뚫을 수 없는 갑옷을 입고 있다.”
▶ 잃을 때 – 일과 직위와 직함이 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러한 것들을 만든다. 어떤 직위에 있는 사람이 그 자리를 떠났다고 해서 전보다 못한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다고 해서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 잃을 때 – 우리의 품성이 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다. 다이아몬드를 가진 바보는 여전히 다이아몬드를 가진 바보다.
▶ 사랑할 때 – 진실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이 위축될 때까지 굴욕감을 주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타인을 비하하는 일은 결코 사랑으로 발전할 수 없다.
▶ 사랑할 때- 사랑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다른 사람이 하느님을 볼 수 있게 한다. 사랑은 감각과 판단 너머에 있는 것을 보게 한다. 사랑은 우리의 실제 모습을 그리고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한다.
▶ 웃을 때 -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을 때, 실수를 하고 웃을 수 있을 때, 그래서 그 실수가 숨겨야 되는 인생의 한 비극이 아니라 잠시 규칙에서 벗어난 느낌이 들 때, 그 웃음은 건강에 좋다.
▶ 웃을 때 - 이슬람교의 신비주의 종파인 수피교에는 이런 말이 있다. “돼지에게 노래 부르는 것을 가르치려고 애쓰지 마라. 그것은 가르치는 사람을 좌절시키고 돼지를 짜증 나게 만들 뿐이다.” 인생에 흠이 하나도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웃음은 그 흠을 모아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바꾼다. 웃음은 지혜의 심장이다.
▶ 전쟁의 때 - 우리는 황무지를 만들고 그것을 평화라고 부른다.
▶ 전쟁의 때 - 이익에 대한 탐욕은 미묘한 환심을 사는 방식으로 나라 전체를 유혹한다. 무기를 팔아 벌어들이는 돈으로 경제 상황이 좋아지면 누구도 그 이유에 대해 묻지 않는다. 거대한 음모와 침묵의 가면으로 가리고, 지구의 죽음을 초래하는 공장에서 얻은 돈을 ‘경기 선행지표’라고 부른다.
▶ 전쟁의 때 - 무력을 앞세워도 가난으로 죽는 사람은 끊이지 않는다. 이는 복지 국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전쟁 국가가 되었기 때문이다.
▶ 치유될 때 - 최근 건강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번지면서 사람들은 육체의 건강을 위해 많은 돈을 쓰지만, 정작 병든 영혼은 내버려 둔다. 그러다가 어느 날 권력, 부, 성공의 삶의 목적인 사회에서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기는 것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 치유될 때 - 치유를 막는 첫 번째 장애는 공통에 대한 집착이다. 고통을 붙들고 있으면 치유될 수 없다. 스스로가 치유받길 원해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억울함을 버려야 한다. 두들겨 맞는 일이 끝났을 때에는 일어나서 다른 방향으로 단호라게 계속 가는 수밖에 없다.
▶ 치유될 때 - 치유의 두 번째 단계는 새로운 인생관을 찾는 것이다. 안정, 사랑, 믿음 등 이전의 인생관에서 벗어나, 새롭게 찾아야 한다. 우리의 희망이 다시 새롭게 도전하도록 해야 한다.
▶ 치유될 때 - 치유의 세 번째 단계는 우리가 누구도, 어떤 것도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우리 자신을 타인에게 의탁하는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이 마음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 타인 안에서 자신에 대한 수용과 이해를 발견하며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기를 희망할 때, 치유가 시작된다.
▶ 치유될 때 - 마지막 단계는 치유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치유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평화를 느낄 수 있다.
▶ 뿌릴 때 - 희망이 없고 반대가 강할 때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중동에는 이런 격언이 있다. “매일 아침, 나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을 향해 서서 씨를 뿌린다. 씨를 뿌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정면을 향해서서 바람을 맞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반대에 맞서 꿋꿋하게 서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씨 부리는 사람의 진정한 카리스마이다.
▶ 뿌릴 때 - 아직 오지도 않고, 만들어지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한 단계 더 높은 도덕적 차원의 씨를 뿌리는 일은 쉽지 않다. 이는 성공을 바라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씨를 뿌리는 것은 양심이 있는 사람들, 지금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더 높은 차원의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 뿌릴 때 - 씨 뿌리는 사람들은 ‘때가 되었을 때’가 있다는 것을 믿는다.
흰멧새가 물었다.
“가지가 부러지려면 얼마나 많은 눈송이가 필요할까?”
먹구름이 대답했다.
“그거야 아무도 모르지. 내 임무는 그저 눈을 충분히 뿌리는 것이니까.”
그러자 흰멧새가 슬프게 말했다.
“아, 그렇구나. 그렇다면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목소리가 필요한지 아무도 모르겠구나......”
▶ 뿌릴 때 - 씨 뿌리는 일은 분명 느리고 고된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가능성을 기대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굳어지고 정신이 무너질 수도 있다. 즉시 결과를 보기 원하는 문화에서 씨를 뿌리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수양이다.
▶ 죽일 때 - 시기는 우리의 삶이 풍족해도 항상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면서 만족할 줄 모르게 한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것을 보면 갑자기 우리가 가진 어떠한 것도 좋아보이지 안는다.
▶ 죽일 때 - 음욕은 진정한 관계를 맞을 수 없게 만든다. 사람들이 친구나 연인이 아니라 물건이 되며, 외로움에 대한 일시적인 위안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 죽일 때 - 교만은 다른 사람들이 주는 선물을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자신 안에 갇혀 다른 사람들의 관심과 능력을 통해 무엇이 우리에게 올 수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그 한계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빈약한 삶을 살게 된다.
▶ 죽일 때 - 나태는 성취의 기쁨을 빼앗아 간다.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그 결과 자신을 정화하는 실패의 고뇌나 성공의 흥분을 깨닫지 못한다.
▶ 죽일 때 - 분노는 우리의 영혼을 뒤집어 놓는다. 우리는 하느님의 정의를 받아들이면서도 그분의 목적에 맞게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지 않는다.
▶ 죽일 때 - 겸손 할 때 깨달음도 온다. 우리의 영혼에 낮게 깔려 있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의 주위의 거센 파도도 볼 수 있다. 냉혹한 비즈니스 속에 있는 순수한 열정과 완고한 종교 안에 있는 숭고함을 찾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주위 사람들의 착한 마음을 끌어 올릴 수 있다.
▶ 죽일 때 - 매우 경건한 유다인들이 자신들의 랍비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에게 돈을 준 것에 대해 비난했다. 그들은 그 사람이 돈을 좋지 않은 곳에 쓸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랍비는 말했다. “내가 이 돈을 줄 때, 하느님이 나에게 돈을 주셨을 때보다 더 까다로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 죽일 때 - 인생에서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죄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우리가 전염병을 보듯이 피해야 할 것은, 죄를 짓고도 결백을 주장하는 뻔뻔스러움이다. 바로 이것이 가장 큰 죄다.
▶ 수확할 때 - 우리는 지금 하는 일의이 목적과 의미를 묻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결과, 목적에 달성했을 때에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저 일벌처럼 그 다음에 행야 할 것에만 집중한다. 우리는 열심히 심고 키울 줄만 알지, 수확할 때는 모른다.
▶ 수확할 때 - 수확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공은 단지 결과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성공은 과정 그 자체다. 그래서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건에 자신을 내던질 가치가 있는 목표를 갖는다. 확신할 수 없는 희미한 꿈이지만 그들은 기꺼이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 울 때 - 끔찍한 병으로 고통을 받는 한 유다인 남자가 랍비에게 자신의 고통이 율법을 배우고 기도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불평했다. 그러자 랍비가 말했다. “이보게, 자네는 하느님이 자네의 배움과 고통 중에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떻게 아는가?”
▶ 삼갈 때 - 본질적인 자유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자유보다 무언가를 하지 않을 자유다. 초과 근무를 하지 않을 자유, 과식 하지않을 자유, 과장 하지 않을 자유, 절제의 자유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진정한 비법이다.
▶ 삼갈 때 - 절제의 영성은 균형의 영성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더 적게 원할수록 신을 더 닮아 간다.”
▶ 얻을 때 – 일의 영성은 우리의 손으로 하는 일을 하느님의 일로 거룩하게 만든다는 의식에 바탕을 둔다.
▶ 하늘 아래 모든 목적의 때
“저처럼 미천한 사람이 어떻게 모세처럼 살 수 있습니까?”
스승은 제자에게
“자네가 죽을 때, ‘너는 왜 모세처럼 살지 못했나? 라는 질문을 받지 않는다네. ’너는 왜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했나? 라는 질문을 받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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