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라.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Chisto omnino nihil praeponant. R. B.
– 머리말 72,11
“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 아니 집 근처에서 하는 산보조차도 우리에게 풍요함과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경탄과 함께 새로운 시각이라는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과거로 향하는 여행도 다를 바 없습니다.
옛 서류들, 편지들 그리고 이야기들을 공부하거나 지나간 세대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을 읽는 많이 이들이
누렇게 빛바랜 종이들 안에 얼마나 풍요한 삶이 스며있는지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
형제들은 영적 독서에 열정적으로 힘을 기울였으며, 장상이 손수 개인을 위한 책들을 골라주었다…
원장은 형제들 상호 간에 진실한 사랑을 불러일으키고자 각별한 배려를 하였다,
자주 ‘카리타스’라고 일컬어지는 ‘깨끗한 형제애’는 그 공동체의 특징이 되어야만 했고
“이 사랑이야말로 수도 성소와 사도직 성소의 가장 확실한 증거”라고 라이헨바흐에 관한 소책자와 회헌의 초안은 말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도 애덕이 우리 안에 뿌리를 내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우리의 삶이 하느님과 일치되도록,
그리고 형제들이 함께 화목하게 사는 공동체가 되도록 우리를 지탱해 주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애덕이 부족하다 함은 어떤 지원자가 우리 공동체에 성소를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였습니다.
내가 만일 라파엘로나 티찌아노 같은 천재성을 지니고 그들처럼 갈채를 받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한 단순한 사제, 세례와 그리스도교적 교육으로서 비록 한 아기라도 하느님의 모상으로 또 천상 영광의 상속자로 만들 힘을 지닌 사제가 되는 은총과 바꾸겠다.
불멸의 영혼이 하느님을 닳게 하고 하느님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것, 이 것이야말로 참 예술이며 가장 심원한 과학이다…
우리는 너무나 은혜를 모르며 사랑이 지독히도 부족하다. 우리가 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비틀대도록 그냥 내버려둔다.
‘사제의 직책을 포교 사업에 바치겠다는 갈망은 거의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밀려 왔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원을 받았듯이, 저도 바로 그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고 싶습니다. 남에게 사랑을 바치는 그러한 애덕 사업을 통하여 제 자신이 개과천선하여 성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원 후 저는 해외 선교를 할 수 있는 허락을 얻고자 빈번이 장상에게 청했습니다… 만일 선교 성소에 대한 저의 확신이 조금만 덜 했더라도 저는 선교 활동이 하느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불안의 원천, 유감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선교 활동을 이미 수도생활도 들어서기 전부터 제 소명으로 알고 갈망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것을 정주 서원을 거스르는 유혹이라고 간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을 저의 소명으로 여길 수 밖에 없었고 이 목적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해 동안 매일매일 희생하고 성무일도를 바치며, 일을 할 때마다 이 거룩한 봉사가 하루 빨리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기도 드렸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 기꺼이 이세상에서 내쳐지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1고린 4,13 참조). 저는 수도원의 아름다운 정적을 즐길 수도, 더 나아가 얼마간 사람들의 인정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제 형제들에게 이방인이 되었고(peregninatus fratribus meis, 시편 68,9), 제 이웃들에게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단지 저는 제 자애심과 자존심을 거슬러 아버지의 집에서 가장 미소한 날품팔이꾼이 되었고, 다른 이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구원을 모험에 걸며, (제가 이전에 그리고 아꼈던) 제 영예를 하느님 이름의 더 큰 영예를 위해 희생하고자 합니다. 이 수년의 시험이 제 최대의 에너지를 소비한 것이 아니고 제 이웃을 위해 소모된 해들이었다면 좋겠습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저는 오직 시작만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이 그 일을 보다 더 잘 짊어지고 나아가도록 하게 하는 건가 봅니다… 원컨ㅐ 제겐 거의 기대하지 마시고 오히려 하느님께 많은 기대를 거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분께서 이 일이 성공하기를 바라신다면 그분께서는 가장 연약한 이를 강하게 하시고 밝히시어 그 일을 완성시키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일과는 달리 ‘아무도 그 분 앞에 자랑할 수 없도록'(1 고린 1,29 참조)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팔짱을 낀채 게으름을 부리려는 것이 아니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하려 합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폐허가 된 수도원에 혼란스업게 널려있는 잔해들 가운데서 일했다. 방들을 하나하나 치우고 정도한고 수리하면서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갔다. 무엇보다 먼저 깨어진 유리창들을 바꾸어야 했기에 책임을 맡은 형제가 유리를 자르고 나는 어떻게 접합체를 마련해 유리를 끼워 넣을 수 있는지 배워야만 했다. 목수 일을 맡은 아직 나이어린 지원자는 여기저기 바빴다. 바람과 눈 그리고 추위를 막기 위해 문을 수 없이 만들어야 했으니까… 굴뚝도 고쳐야 했고 갈라진 벽은 메워야했으며 검게 된 천정과 벽돌은 그걸 고치고 깨끗이 하기 위해 우선 긁어내어야 했다. 나는 천정과 장식칠 세공불에서 검댕이 껍질을 긁어내느라고 혼자서 몇 주일 동안이나 발판 위에서 일했다. 이 일은 쉽게 피로를 몰아오는데 특히 매우 음산하고 추운 겨울의 주간들엔 더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우리를 돕고 보호하면서 지켜주었다. 한 번은 벽을 긁어내다가 발판에서 미끄러져 떨어졌는데 아무 상처도 통증도 없었다. 나는 즉시 다시 발판으로 기어 올라 갈 수 있었고 마치 아무 일도 안 생겼던 듯 일을 예정대로 다 마칠 수 있었다.
“저는 자신이 마치 주님을 등에 태우고 지난 80년간 더럽혀졌던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는 새끼 나귀 같이 여겨졌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개선 행렬을 위해 필요로 하셨던 짐승, 나귀 말입니다. 루가 복음사가는 ‘구께서 쓰기겠답니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말은 제게 용기를 주며 또 저희 모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개선을 더 빛내기 위해 저희의 미약한 힘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고무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위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 할 영적 건축에 비한다면 돌로 짓는 건축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과연 영적 건축은 머릿돌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내적으로 견고해갔다. 플레슈츠 수사의 타오르는 듯한 어투와 젊은 열의로 가득한 표현은 그들의 금빛 열정을 드러내준다. 이렇게 말한다. “다른 젊은이들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 가를 볼때, 일이든 기도이든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영광과 이웃의 선을 위하여 행해지는 것을 볼 때, 제가 어떻게 자극받고 고무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거룩한 경주에 누가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겠습니까? … 이 집에는 확고한 규율이 있습니다… 여기서 저는 이미 수많은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의 창설과 초기 발전사를 담은 책, 『하느님의 충실성에 의지하여 제Ⅰ권』에는 창설자 안드레아스 암라인 신부의 생애에서 초대 총장 비르깃다 코르프 수녀의 생애에 이르기까지 하느님 섭리의 역사가 녹아 있다.
이 책은 베르니타 발터 수녀(Sr. M. Bernita Walter, OSB)가 집필한 독일어 원본 회역사를 마틸다 한들 수녀(Sr.Matilda Handl,OSB)가 영역하였으며, 이를 참조하여 배은주 이사악 수녀(Sr.Isaac Bae,OSB)가 번역 한 것이다.
이 책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소설 안의 영웅들도 전설적 인물들도 아닌 바로 우리의 형제, 자매이며 같은 베네딕도 규칙을 따라 이루어진 영적 가족들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성소대로 살고자 분투했던 이들이고, 오늘의 우리가 하느님의 충실성을 경험하듯 이를 경험하고 산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기록의 단편들을 통해 교회 안에서 우리 회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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